히틀러 유대인 학살 이유 홀로코스트 뜻 알아봤습니다.

유용한 정보|2020. 5. 1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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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뜻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중 독일이 나치당을 이끈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과 집시, 정치범 등 1천1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으로 학살된 인원중 유대인이 6백만 명으로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으로 대학살 사건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4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의 세무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죽음은 1945년 4월 30일입니다.

청소년 시절 부모님의 여의고 화가를 희망해 대학시험을 봤으나 두 번 떨어져 건축일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바이른 연대에 지원해 군인이 되었고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입원했을 때 정치가의 꿈을 꾸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뮌헨에는 많은 혁명단체와 당이 활동했습니다. 

그는 독일 노동당에 들어가게 되는데 당에서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사회주의를 내걸었습니다. 

 

입당 후 그는 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1920년에 당 이름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으로 바꾸는데 이게 나치스라고 합니다. 노동하지 않으면 수입을 올리는 행위를 없앴으며 기업은 국가에 귀속된다는 내용이 나치당 의 의견이었습니다. 

 

세계 대공황이 불어닥친 1932년 독일에 실업자는 45%였습니다. 

국민은 정부를 비난했으며 나치당에 눈길이 쏠리기 시작합니다. 

나치당은 특히 농민과 중소기업층의 지지를 얻으며 1당으로 됩니다. 

 

1932년 11월 선서 결과 자본가들과 보수세력들도 나치당을 지지합니다. 

1933년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수상으로 됩니다. 

그는 바로 총선거를 실시해 나치 당 의석을 과반수로 올려놓게 되며 국회에서 내각에 모든 권한을 갖게 됩니다. 

대통령 사망 후 그는 수상 겸 대통령이 되며 총통이라 불려지며 독재가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의 유대인 학살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의 유대인 학살 배경엔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 학살 이유를 한마다로 정의하면 유대인이 독일의 경제와 언론을 장악하고 독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외래 민족이 국가경제를 장악하면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 경제가 매우 안 좋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독일 경제를 장악하고 독일의 경제 부흥에 도움이 되지 않아 그는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친위대와 국가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동원해 반대파를 모조리 뒤져 가두게 됩니다. 

이후 그는 준비해온 전쟁준비로 1939년 이탈리아와 손잡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일본도 끼어들어 세 나라가 세계 정복에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전쟁을 전후로 유대인을 체포한 뒤 강제 수용소에 보냈는데 수용소가 자그마치 900군데 이상이었고 

그중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가장 악명이 높았으며 이곳에서 25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게 됩니다. 

 

나치스는 학살 방법으로 생매장, 독가스를 이용했으며 생체실험 도구로 삼는 등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자행하게 됩니다. 

 

독일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다, 

히틀러의 독일은 전쟁 초기에 승승장구하다 1942년 러시아 패전을 고비로 패함에 징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미국의 전쟁 참여와 더불어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독일은 패하게 됩니다. 

 히틀러의 죽음과 생존설 알아봤습니다. 

1945년 4월 30일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들어와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 숨게 됩니다. 

탄약이 떨어져 필연적으로 패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는 14시 30분경 에바 브라운과 함께 서재로 들어갑니다. 

15;30분 총소리가 났고 잠시 뒤 부하인 하인츠링게와 보르만이 문을 열게 됩니다. 

소파에 널브러진 시체 두구를 발견하게 되고 아내 에바 브라운은 시안화칼륨 캡슐을 먹고 히틀러는 독약과 더불을 권총으로 자살을 하게 됩니다. 

시신은 벙커 비상구를 통해 옮겨졌고 구덩이에 넣은 뒤 가솔린을 뿌려 불을 붙이게 됩니다. 

바로 양탄자를 가져와 태우면서 16시~18시 30분까지 태워집니다. 

이후 5월 1일 라이도에서 히틀러의 사망 소식이 나오게 됩니다. 

공식적인 히틀러의 사망 이야기입니다. 

 

위에 이야기는 연합군이 조사해 밝혀진 내용으로 독일군 측 목격자 증언만이 유일합니다. 

소련군이 히틀러의 유골을 발견한 건 5월 2일이었는데 미국, 영국, 연합군은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유골이 영성의 것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가 생존해 있다는 소문은 45년 당시에 파다했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이런 의혹을 뿌려 서방국가들을 혼란스럽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2009년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고고학자인 닉 벨란토니 교수가 러시아 국가기록 보관소가 보관하던 히틀러의 두개골을

dna 검사를 했는데 이뼈는 40대 미만 여성의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두개골은 2000년 러시아에서 히틀러의 유골이라고 밝혔고 이교수는 오랜 기간 러시아 축에 조사를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한끝에 승인을 받게 됩니다. 

결과 발표전 많은 동료 연구진들과 상의했으며 검증도 거쳤다고 합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히틀러는 여성이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유 골이 20대 이상 40대 미만 여성의 유골이라 판명되었는데 히틀러의 사망 나이는 56세였습니다. 

 

 해외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해외 도피설은 유골 검사 전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소련으로 가서 살았다는 거고 또 하나는 아르헨티나로 가서 농장을 운영했다는 겁니다. 

 

남미는 나치 고위 관리들이 피난처로 많이 간 곳이라고 합니다. 

에르 헨티 나는 그 당시 정부라면 히틀러를 받아줬을 가능성이 있으며 목격담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고 합니다. 

소련 도피설은 그가 전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스탈린이 받았다고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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